전성권 발행인

울산 남구 태화강 바람이겨울 끝자락을 두드리던 날이었다.
전마루는 검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
천천히 골목길을 걸었다.
도시의 불빛 속에서
검을 향한 마음이 더욱 또렷해졌다.
오늘 마루가 향하는 곳은
한때 태권검도 지도자 연수에 함께했던 도장.
지금은 간판조차 희미하게 지워진 채
쉬어가듯 숨을 고르고 있었다.
문을 밀자,
낯익은 기척이 안쪽에서 흘러나왔다.
“형.”
낮고 담담한 목소리.
마루가 돌아보자,
그곳엔 떠난 뒤 소식이 끊겼던 이진석이 서 있었다.
검 대신 맨손으로,
하지만 눈빛만큼은 검보다 더 날카롭게.
“여기서 다시 만나네.”
마루가 미소 지었다.
“검이 이끄는 길을 따라갔더니
형이 여기 서 있더라구요.”
진석은 무심하게 대답했지만
그 말 속엔 흔들림 없는 존경이 담겨 있었다.
둘은 말없이 바닥에 앉아
잠시 숨을 고르며 시간을 나눴다.
“왜 떠났던 거지?”
마루가 천천히 물었다.
진석은 잠시 눈을 감았다.
“누구를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
제 자신을 지키기 위해
검을 들었습니다.
그 길이 협회가 아닌 곳에 있다고 믿었어요.”
마루는 고개를 끄덕였다.
“검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게 마련이지.
하지만 검이 서로를 찌르지 않도록 하는 일…
그건 우리가 붙잡아야 할 마음이야.”
진석의 손이 무릎 위에서 조용히 움츠러들었다.
“형,
전 잘 하고 있는 걸까요?”
마루는 주저하지 않았다.
“네가 검을 놓지 않는다면,
길은 언제나 이어져.”
두 사람은 말없이 일어났다.
눈빛이 검보다 먼저 흐름을 이루었다.
한 걸음,
그리고 또 한 걸음.
초승달베기가 시작되었다.
공기를 가르는 흐름이
두 사람 사이를 하나로 묶었다.
각자의 방식이지만
동일한 철학으로 이어진 움직임.
이 순간만큼은
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
아무 의미가 없었다.
검은 다시
서로를 향하지 않았다.
같은 방향을 바라보았다.
다음화 예고
제23화. 검은 글이 되어 후세에 남는다
말로 전해야 할 마음이 있다면,
글로 지켜야 할 진심도 있다.
태권검도의 철학이 처음으로 정식 문서가 되는 순간이 열린다.